경유지에서

내 자신이 때때로 이동하고 있다는 감각에 예민해지는 시간이 있다. 문득 내가 있던 자리가 어느새 저 멀리에 있는 것을 확인할 때. 지난 화두가 낡은 것이 되고, 새로운 화두가 마음 속에 자리잡은 것을 알게되었을 때. 그리고 그 새로운 화두가 조금도 낯설지 않을 때. 그런 여행은 이미 지난 영토를 다시 걷는 경유지에서의 기시적인 체험 역시 함축할 것이다. 잘 아는 경계를 지나 낯설어진 풍경 A'으로의 재진입을 표시하는 새로운 악장의 서두들. 무심코 지나쳤던 의미심장한 개요가 이전에 방황한 다른 영토에서의 기억들로 정당화되며 이어질 B'또는 C를 예고한다. 경유지로 회귀할 때마다, 그리고 새로운 여행을 준비할 때마다, 이 연주는 어느 경우에도 앞으로 영구히 반복될 A라는 원점에 대한 기나긴 주석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