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찾기

이 만화에서 나온 '혼종' 이라는 표현이 재밌는 것은 굉장히 한국적이면서, 스스로를 역사화하려는 충동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종이라는 비난은 결국 '족보도 없는 놈' 이라는 한국적 욕설의 변주이다. 누군가의 족보 없음을 비난한다는 것은 동시에 자신에게는 족보가 있다는 이야기다. 족보를 만든다는 것은 정통성을 선언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혼종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통해 이 만화는 스스로를 한국 여성 운동의 '적자'로 선언하고, 그 족보에 들어갈 수 없는 누군가를 명시한다. 족보를 만드는 것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행위다. 그 족보 자체가 정통성에 대한 증명이자 대의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독점해야 운동이 '바로 선다.' 그러려면 누가 '혼종'인지, 역사에 낄 자격이 없는 존재인지, 위대한 역사적 사명을 훼방놓는 무임승차자인지 정확하게 구획할 수 있어야한다. '대한민국의 적'인 '종북 세력'이 있어야 진짜 대한민국 역사의 정통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족보는 언제나 혼종을 필요로 한다. 순수성을 더럽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순수성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