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내가 못생기게 굴었던 일이 생각난다. 왜 그랬는지 생각도 안 나고. 그냥 갑자기 미안해졌다. 왜 그걸로 화를 냈지. 모질게 말한 것은 결국 자기한테 돌아오는 모양이다. 그 때의 내 더듬거리는 말투, 상대방의 곤란한 표정, 수습되지 않는 분위기가 자꾸 머릿속에 눌어붙는다. 정작 말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자기를 지키기 위해, 밀릴 수 없으니까 괜찮다고 자기한테 되뇌였던 순간들이 생각난다. 나한테도 지켜야할 것이 있었거든. 왜냐면 예전에는 그것을 너무 쉽게 남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굴욕인지도 몰랐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춥다. 밤이 되니까 방 안도 쌀쌀한 것 같다.

내적 친밀감을 느껴서 잔뜩 이야기하고 난 뒤에 왠지 잘 전해지지 않은 것 같고, 뭔가 실패했구나 싶다가 문득 깨닫는 게 있다. 아, 우리 그런 사이는 아니었구나? 그냥 내가 큰 의미 없는 지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내 가치는 그에게 딱 그 정도였구나 생각할 때. 그런 떄는 외로워진다.

차분하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자기 암시 같은 것이다. 문장의 간격마다 다양한 감정을 흘려보낸다. 감정이 흘러가고 단단하게 남은 것들이 문자라는 생각을 한다.

거짓말을 쌓아 세운 성. 틈새는 막연한 다짐을 발라 굳혔다. 그런데도 어디론가 공기가 스며들어 온다. 바람이 싣고 온 것은 누군가의 이름이다.

죽은 꿈도 말을 한다. 띄엄, 띄엄. 사실은 모든 게 거짓말이었노라고. 변명까지 하얗게 굽는 고열에 불타면서 고백하고 있었다. 소각이 끝나고, 곱게 빻은 잿가루를 받아들면서 중얼거렸다. 꿈의 골격은 변명으로 되어있구나.

나아가다가 문득 뒤돌아본 과거의 이력은 항상 부조리한 진동으로 가득찬, 나선형의 궤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런 조망 속에서 지나온 시간은 늘 어리석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분투의 과정으로 얼룩져있는 것이다. 매일 매일을 가감없이 전부 기록한다면 그 이력은 같은 장소를 맴돌고 중언부언하는 지리하고 진부한 과정을 전부 담고 있겠지만, 일기장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그런 이력을 지워버릴 수 있다. 마치 건너야할 디딤돌만을 밟으면서 걸어 온 것처럼 논리적 전개만 남기고 자신의 인생을 편집할 수 있다. 그랬을 때 개인의 역사는 무질서하게 찍혀있는 점들의 진동 운동에 대한 세부묘사가 아니라 선형의 함수처럼 표현될 것이고, 인용된 각 순간들의 의미를 목적론적으로 꾸며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그런 자기 소개를 하나씩 ..